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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커피 역사: 커피믹스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by 작가석아산 2024. 6. 2.

 

한국 커피 역사: 커피믹스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한국 커피 역사: 커피믹스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한국 커피 역사: 커피믹스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1976년 12월, 동서식품이 개발한 커피믹스가 등장하였습니다.

약사 출신의 한 기술자가 등산객이나 낚시인들이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커피로 고안한 것이 바로 인스턴트커피, 설탕, 크림을 한 봉지에 넣은 커피믹스였습니다.

초기에는 직사각형 모양이었지만 2006년에 스틱형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커피믹스의 위대한 발명품으로의 도약

2017년에 실시한 특허청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발명품 10개 중 5위에 오른 제품이 바로 커피믹스였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매몰되었던 아연 광산 광부 두 명이 커피믹스를 먹으며 버텼다는 소식이 전해져 다시 국민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976년 12월 이 제품의 첫 출시 당시에는 동서식품에서 광고조차 하지 않았고, 뉴스에 등장하지도 않았을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제품이었습니다.

지금은 외국인들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차, 외국인 관광객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여행 기념품 선호도 1위 제품이 바로 커피믹스입니다.

 

커피믹스의 시작과 한국 커피 시장의 침체기

국산 커피믹스의 본격적인 시판이 시작된 1977년은 커피 역사에서 여전히 침체기였습니다.

국민소득 1천 달러 달성, 수출 100억 달러 달성, 식량 자급자족 달성이라는 자랑이 난무하는 시절이었지만 커피 소비 시장은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조선, 동아, 경향, 매일경제 등 4개 일간 신문에 등장한 커피 관련 기사는 77건에 불과하였습니다.

신문이 한가하게 커피 얘기를 다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

새로 취임한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4~5년 내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 불가침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박정희 정권 시기 각종 비사와 스캔들을 증언하였고, 미국 법무부는 한국인 로비스트 박동선을 기소하는 등 한미 관계가 요동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박정희정부는 이런 민감한 뉴스들을 국내에 전하였던 일본의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을 강제로 폐쇄시켰습니다.

커피 가격 급등과 커피 안 마시기 운동

1975년 7월, 브라질의 검은 서리 사건에서 시작된 커피 생산량의 감소가 절정에 이른 해가 바로 1977년이었습니다.

브라질 커피나무의 절반 가까이가 서리 피해를 입었고, 이 나무들은 죽어갔지만 새로 심은 나무들은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커피는 발아한 후 4년 내지 5년은 지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브라질의 검은 서리 사건에 이어 또 다른 커피 생산국인 과테말라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커피 생산량이 감소하였고,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국 앙골라에서 벌어진 내란도 커피 공급에 차질을 가져왔습니다.

 

세계 커피 재고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커피 국제 시세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대형 커피 수입업자, 가공업자, 도매업자들의 사재기가 등장하여 공급 부족을 악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커피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977년에는 1975년 대비 커피 소매 가격이 지역에 따라 75%에서 300%까지 상승하였습니다.

미국에서 1975년까지 5센트를 유지하여 오던 커피 한 잔 가격이 10센트, 15센트를 넘어 25센트로 치솟았습니다.

우리나라의 1년 커피 생두 수입액이 1천만 달러를 돌파한 것이 이 해였습니다.

외화 낭비에 대한 비난과 함께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의 국회운영위원장은 "국산차도 좋은 게 많은데 막대한 외화를 써가면서 커피를 마시는 건 낭비"라는 주장을 하며 국회를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 대신 국산차를 대접하라는 특별 지시를 하였습니다.

이것을 신문에서는 '커피 사라진 국회 사무실'이라는 제목으로 받아썼습니다.

이 발표를 했던 국회 운영위원장 방은 마치 국산차 시음장이 되었습니다.

국내의 국산차 제조업자들이 이 발표에 찬사를 보내며 국산차 견본을 보내온 때문이었습니다.

이 풍경 또한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으로' 국민을 위하고 '말로' 민생을 책임지는 데 누구보다 앞에 나서는 것은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커피 가격 급등과 국제적 대응

커피 생두 가격의 폭등에 더욱 민감한 것은 커피 소비를 주도하고 있던 서구 선진국들이었습니다.

나라별로 대응책을 내놓기에 바빴습니다.

크게 두 가지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는 대용커피의 개발이었습니다.

스위스 네슬레는 치커리를 섞은 커피를 개발하여 시판을 시작하였고, 미국의 제너럴푸드는 소맥 40%를 배합한 커피를 개발하여 내놓았습니다.

콩과 당밀을 섞은 대용커피 판매를 하는 회사 등도 등장하였습니다.

 

대용커피 40%를 넣은 커피는 20~30% 낮아진 가격에 판매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줄이고 차를 마시자는 운동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커피보다 차를 즐기던 영국인들은 너나없이 커피를 포기하고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문제는 차 소비가 급증하면서 찻값이 1년 사이에 4배로 폭등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커피값의 1/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977년 당시 커피 소비량이 우리나라의 1백 배인 연 30만 톤으로, 세계 3위 커피 소비국이었던 프랑스에서는 공무원들이 나서서 "커피잔을 조금 덜 채우고 대신 애국심을 담자"고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과 브라질의 커피 갈등

커피 가격 상승으로 가장 심각했던 것은 커피소비 1위국 미국과 생산 1위국 브라질의 갈등이었습니다.

때마침 등장한 카터행정부가 외국의 인권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른바 도의외교였습니다.

미국 국무성에서 펴내는 인권보고서에 인권 억압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일쑤였습니다.

1977년 인권 보고서에서 브라질이 인권탄압 국가의 하나로 표기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브라질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며 두 나라 사이의 방위조약을 폐기하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이에 맞서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브라질 커피 불매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을 벌여 커피 생산국을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유행한 커피 목욕

세계적으로 커피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던 이 시절에 일본에서는 때아닌 커피 목욕이 유행하여 세상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에 따르면 일본 도쿄의 북쪽에 있는 고소사우나센터라는 커피목욕 전문 업소는 문을 연 지 6년이 지났는데 성업 중이었습니다.

커피 목욕이 피부 미용에 좋다는 소문을 타고 외국인 고객들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깊이 1.5m, 길이 4m의 둥근 통에 25톤의 커피와 파인애플이 짓이겨져 들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주로 비행기 조종사, 미군, 사업가, 주부들이었는데 목욕 방법은 탕 속에 들어가 약 20분 동안 목까지 푹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술 원료 속에 들어가 발효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법이었습니다.

한번 이용하고 나면 체중이 1파운드(약 450g)씩 빠진다는 소문에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커피값이 비싸도 장사가 잘되는 것은 피부가 고와지기를 원하는 여성들 때문이라는 것이 이 센터 종업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탕 속의 커피와 파인애플은 비싸기 때문에 6개월에 한번 씩 교체를 하며, 입장료는 일본 돈 1천5백엔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25잔 정도 마실 수 있는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한국의 커피 문화 발전

이 해에 씨스코라는 기업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캔 커피 2종의 시판을 시작하였습니다.

신문 광고를 보면 "미국풍의 본격 커피 '타임커피'"와 "프랑스식의 분위기 커피 '카페오레'" 2종이었습니다.

동서식품에서는 그동안 판매하던 부드러운 맛의 원두커피에 이어, 강한 맛의 유럽식 네오 칸 원두커피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커피 문화는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커피믹스는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커피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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